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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호갑사(捉虎甲士) 이겸수(李謙受) - 35 -29. 1596년 12월 29일 오전 11시. 경북 경주성내(慶州城內) 경상좌병영(慶尙左兵營)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최대의 전투로 손꼽히는 조?명 연합군의 울산 도산성 공략. 17~18세기 일본에서 제작된 `울산성 전투도 병풍` 중 한 장면으로 수천에 달하는 조?명 연합군이 울산성의 왜군진영을 향해 진경해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사진 및 소장처 : 서울 종로구 북촌미술관).
김 규 봉[소설가/시나리오 작가/양산문인협회 회원/양산문화원 회원/가락양산역사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

 긴급회의에 참석하라는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 성윤문(成允文)의 명을 받은 이겸수는 기장진의 현안을 이방인 군관 차현진에게 미루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말을 달려 경상좌병영에 도착했다. 이미 좌병사 집무실 안에는 경상좌병영에 소속된 군수와 현감 등 다수가 자리에 앉아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오늘 회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집무실에 들어선 이겸수 역시 장기현감을 비롯한 여러 군수와 현감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는 사이에 경상좌병사 성윤문이 집무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이어 아직 도착하지 않았던 나머지 군수와 현감들도 속속 도착해 자리를 채웠다. 이겸수는 상석에 앉아 앞에 놓인 책이나 간찰 따위를 보고 있는 좌병사 성윤문을 쳐다봤다. 
 `오시자 말자, 큰일을 맡게 되셨구만.`
 지난 9월 그간 경상좌병사를 맡고 있던 고언백((高彦伯)은 모친이 위독하다는 이유를 들어 자리에 물러났다. 물론 표면상의 이유는 모친이 위독한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이겸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의 사직이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은 것과 의병장 김덕령이 억울하게 옥사(獄死)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몽학의 난으로 조선에 전란이 아닌 역모로 인한 피바람이 불었고, 자칫 자신 또한 그 난에 연루된 것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곤욕을 치렀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내시부에서는 고언백을 사찰하고 있다는 소문이 대 놓고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상황이 이럴진대 어찌 경상좌병사라는 직책을 수행할 수 있겠나 싶은 것이 이겸수의 심정이었다. 
 물론 대신 경상좌병사로 부임해온 성윤문 또한 훌륭한 지휘관이라 생각했다. 성윤문은 경상좌병사 부임 이전에 경상우병사(慶尙右兵史)를 맡고 있었다. 그 역시 고언백 못지않은 용장이었고, 왜군을 상대로 다수의 전과를 올리기도 한 명장이도 했다. 조정에서 당장 시급한 고언백의 후임을 성윤문을 꼽은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허나 이겸수는 아쉬웠다. 고언백은 조선장수 그 누구보다 가등청정을 상대로 싸운 이력이 많은 장수였다. 그런 탓에 지금 코앞에 가등청정의 주력 부대와 마주하고 있던 이겸수로서는 고언백의 부재가 너무도 아쉬웠다. 그간 든든하게 지붕을 받치고 있던 기둥이 하나 빠져 나간 듯했다.        
 "좌병사 영감, 모두 도착하였사옵니다." 좌병영에 소속된 군관이 소속 군수와 현감의 전원 도착을 좌병사 성윤문에게 고했다. 좌병사 성윤문은 손에 들고 있던 간찰을 접어 내려 놓았다.  
 "다들 급히 연락을 받았을 터인데, 이리 모여주니 고맙네. 다들 들어 알고 있겠지만 명나라와 왜군 간의 강화협상이 틀어졌네. 조정에서는 왜군이 다시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 여기고 각 군영에 경계를 강화하라 명하였네."
 좌병사 성윤문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군수들과 현감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는 아예 벌써부터 도망갈 기색을 내비치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겸수는 속에서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허나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여겼다. 왜냐하면 앞선 혹독하고 참혹한 전란에서 겨우 살아남아 벼슬을 얻었는데 다시 그런 전란이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자리하고 있는 군수와 현감 중에는 무관이 아닌 문관이 다수 차지하고 있었다.   
 "좌병사 영감,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닐지요. 내 알기로 서생포성에 주둔 중인 왜군의 동향은 특별한 것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울산 군수(蔚山郡守) 김태허(金太虛)가 왜군의 재침이 있을 것이라는 조정의 판단에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도 믿고 싶지 않네. 허나 사실이지 싶네."
 좌병사 성윤문의 말은 회의장 내에 또 다른 파문을 일으켰다. 그것은 앞으로 전란이 있을 것이니 대비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아직 서생포성과 지근 거리에 남아 있던 왜군의 수효는 거의 1만에 육박했다. 경상좌병영 전체 군사 보다 무려 5배나 많은 숫자였다. 비록 명군이 있다고 하나, 남부 해안 지역에 형성된 전선을 따라 얇게 퍼져 있었다. 거기다가 주력은 한양 이북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었다. 다시 말해서 명군이 전열을 정비하고 남하(南下) 하는 동안, 어쩌면 수개월이 걸릴 지도 모를 기간 동안에는 조선 관군과 의병들로 버텨야하는 상황이었다. 군수와 현감들은 자신의 군영에서 확보하고 있는 군사의 수와 군량 그리고 무기의 숫자를 머릿속으로 빠르게 셈했다. 비록 전란 초기보다는 강화되기는 했지만 대량의 왜군을 맞아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그런 계산은 당장 회의장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좌병영 역시 뒤로 물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경주성과 서생포성은 지척이옵니다. 만일 저들이 병력을 보충하여 밀고 올라온다면 경주성을 지키기 어렵지 않습니까?"
 장기현감(長?縣監) 윤기충(尹紀忠)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타당한 지적이었다. 경주성은 앞선 전란으로 이미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따라서 수성전을 펼치기에는 부적절했다. 그런 점을 좌병사 성윤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윤 현감, 너무 섣부른 발언이 아닌가! 어찌 그런 발언으로 좌병영의 예기(銳氣)를 꺾으려 드는 겐가! 앞으로 삼가시게!"
 좌병사 성윤문이 윤기충의 발언을 낮고 단호하게 질책했다. 
 "송구하옵니다."
 좌병사 성윤문의 지적에 윤기충은 잘못을 인정했다. 이겸수 또한 윤기충의 발언이 너무 성급했다고 여겼다. 군영 내의 사기는 매우 중요했다. 지휘관은 발언은 군사들의 사기와 직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회의장 내에 자리하고 있는 군수와 현감들 중 전부가 용맹한 상장(上狀)은 아니었다. 따라서 목숨을 보전하려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었고, 그런 이들에게 윤기충의 발언은 도망치기 위한 좋은 핑계거리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좌병사 영감의 말씀이 맞습니다. 군사의 사기는 곧 전장에서의 승리와 직결되는 법이옵니다. 지금은 물러섬을 논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전 군영이 결진하여 우리의 세를 과시하는 방안을 마련해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각 군영이 얇게 퍼져 있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질 않을 것이옵니다."
 이겸수가 주위의 군수와 현감을 돌아보며 힘 있게 외치듯 말했다. 
 "좋은 방안이라 사료됩니다. 이 현감의 말처럼 우리 좌병영 전체가 경주성에 결진하여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서생포의 왜군들에게 우리의 군세를 미리 알려 함부로 도발치 못하게 해야겠지요." 이겸수가 발언을 마치기 무섭게 언양현감(彦陽縣監) 김흔(金昕)이 지지하고 나섰다. 
 "좋네. 내 생각 또한 이 현감과 김 현감의 생각과 같네. 십여 일 전에 소서행장(小西行長)이 부산포로 넘어왔다고 하네. 비록 그자가 대동한 군선이나 군사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는 하나, 본토로 철군하였던 왜군의 으뜸 장수중 하나가 다시 바다를 건너 왔다는 것은 그 의미하는 바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 내 판단일세. 물론 일련의 사태만으로 본격적인 전란의 확대로 연결하기에는 이르기는 하네. 허나 조정에서는 비변사(備邊司)를 통해 은밀히 왜군의 재침에 대비하라 전하였네. 허니 제장(諸將)들은 각 진영으로 돌아가거든 만반의 준비를 갖추길 바라네. 또한 아무리 작은 왜군의 동향이라 탐지되는 즉시 좌병영으로 통지하여 주시게." "네, 좌병사 영감."
 "그럼, 이제부터 각 진영의 역할을 알려주도록 하겠네."
 좌병사 성윤문이 바로 곁에 선 군관에게 신호를 하자, 군관이 쥐고 있던 족자를 탁자 앞에 있던 걸개에 걸고 펼쳤다. 족자에는 경상좌도의 지도가 세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좌병사 성윤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를 짚어가며 전란 발생 시에 각 진영의 역할을 세세하게 일러주었다. 
 
 "이 현감은 좀 남으시게." 회의를 끝나기 무섭게 좌병사 성윤문이 이겸수를 향해 말했다. 
 "네, 좌병사 영감."
 기장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섰던 이겸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이겸수를 제외한 군수와 현감이 모두 돌아가자 좌병사 성윤문이 이겸수에게 자신의 곁으로 다가와 앉을 것을 지시했다. 이겸수가 자리를 옮기는 동안 좌병사 성윤문은 차를 잔에 부었다. 그리곤 이겸수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건넸다. 
 "감사합니다." 찻잔을 받은 이겸수가 말했다. 
 "내 경상우병사로 있을 때부터 이 현감의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네."
 "무슨 말을 들으신 줄 모르오나, 보나마나 과장된 것일 것이옵니다."
 "하하하. 서생포 왜성으로 들어가 가등청정과 담판을 짓는 일이 어디 보통 일이던가? 나도 어지간히 담이 크다고들 하는데, 내 이 현감의 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싶으이. 주상께서 이 현감에게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별호를 내리셨다고 하지. 정말 이 현감과 딱 들어맞는 별호가 아닌가."
 경상좌병사 성윤문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과찬입니다."
 "전임 좌병사께서도 이 현감을 중용하라 하셨네. 필시 큰일을 해낼만한 재목이라고 당부하시더군."
 좌병사 성윤문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겸수를 바라봤다.  
 "좌병사 영감."
 이겸수는 좌병사 성윤문의 칭찬이 과하다 느끼고 불편해했다.  "내 이 현감을 따로 남으라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만약 전란이 다시 시작되면 이 현감과 기장진이 좌병영의 선봉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네."
 경상좌병사 성윤문의 뜻밖의 말에 이겸수는 깜짝 놀랐다. 경상좌병영에는 자신보다 뛰어난 군수와 현감이 많다고 여긴 이겸수였다. 그런 자들을 제쳐 두고 지금 경상좌병사 성윤문이 자신에게 선봉장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수천의 경상좌병영의 군사들을 이끌고 왜군을 향해 가장 먼저 돌진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물론 우려되는 바도 있었다. 선봉에 서서 싸우자면 피해 또한 막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소장에게 어찌 그런 막중한 책무를 맡기려 하시옵니까?"
 뜻밖의 부탁을 받은 이겸수가 물었다.  "내 알아본 바로는 경상좌병영 군관들이 한결같이 이 현감과 기장진 군사들을 경상좌병영의 가장 정예라 손꼽았네. 이런 평가가 대다수인데 누구에게 우리 좌병영의 선봉장과 선봉군을 맡기겠는가? 안 그런가?"
 "좌병사 영감, 진정 소장에게 선봉의 영광을 주시겠사옵니까?"
 "맡아주시겠는가?" "소장, 신명을 다해 기꺼이 경상좌병영의 선봉이 되겠사옵니다!" 이겸수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군례를 취하며 선봉장이 되겠노라 다짐한다. 자신이 무장인 이상 어차피 전란이 재차 터지면 싸워야만했고, 싸워야한다면 도망가면서가 아닌 가장 앞장서서 적을 향해 돌격하며 싸우고 싶었다.   
 "고맙네. 내 솔직히 이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고민하였네. 비록 선봉이라고는 하나, 수만의 왜군 속으로 돌격하는 일 아닌가? 솔직히 부하를 사지로 내모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하이."
 좌병사 성윤문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군보다 몇 갑절 많은 규모의 왜군을 향해 경상좌병영의 최정예 군사들을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군사를 아끼자고 모두 싸 짊어지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경상좌병영이 시간을 벌어줘야 명군과 조선군의 후방 방어태세가 더 확고해질 터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좌병영의 선봉이 되어 왜군을 쳐부수겠사옵니다."
 이겸수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고, 좌병사 성윤문은 그런 이겸수를 바라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이겸수의 머릿속에는 벌써부터 수만의 왜군을 향해 돌진하는 자신과 기장진 군사들의 용맹한 모습이 그려졌다. 물론 목숨을 부지하기는 장담을 하기 어려웠다. 또한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기장진 군사들의 목숨 또한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적을 앞에 두고 도망치며 비루하게 목숨을 이어가느니 왜군들에게 이겸수 이름 석 자를 알려주고 죽는 다면 이 또한 영광이라 여겼다. 굳게 잡은 환도(環刀) 가볍게 흔들렸다. 이겸수는 칼이 마치 낮게 으르렁 거리며 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피를 원하고 있느냐? 그렇다면 피를 먹여 주마! 왜군의 피를!`
 이겸수는 가등청정이 자신에게 하사한 검을 바라보며 더욱 더 결의를 다졌다.  
 "헌데 이 현감은 아까 윤 현감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상좌병영의 돌격장 문제를 해결한 좌병사 성윤문이 조금 전 회의 중에 나왔던 장기현감 윤기충의 발언에 대한 이겸수의 견해를 물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사옵니까?"
 이겸수가 물었다.
 "그렇네. 네 이 현감의 솔직한 심정을 알고 싶으이."
 "비록 시기는 이르오나 좌병사께서 심중에 셈을 하고 계셔야하는 내용이 아닐런지요. 혹은 이미 셈을 하고 계시다 소장은 여깁니다."
 이겸수의 말에 좌병사 성윤문은 뜨끔했다. 사실 왜군이 경주로 향해 밀고 올라오면 경상좌병영을 뒤로 물려 문경이나 충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그래. 내 아까 다른 제장들 때문에 윤 현감을 큰 소리로 나무랬지만 솔직히 경주성은 이미 앞선 전란으로 깨진 곳이 아닌가? 이런 곳을 수천의 군사로 수만의 왜적을 상대하기란 불가능할 것이야. 그렇게 따지면 상주나 대구도 마찬가지고. 결국 새재를 넘어 충주로 물려야하지 않겠나."
 "소장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만약에 말일세. 왜군들이 재침을 해온다면 이번 진격로는 어디가 될 것 같은가?"
 좌병사 성윤문의 물음에 이겸수는 잠시 머뭇거렸다. 물론 그에 대해 생각해 온 바는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좁은 소견인 탓에 섣부를 수 있다 여겨 망설였다.  
 "말해보게.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잖은가? 단지 이 현감을 생각을 알고 싶은 것이네."
 좌병사 성윤문이 다시 한 번 대답을 재촉했다. 
 "만약 왜군이 재침한다면 소장 생각에 두 곳으로 나누어 병진할 것이라 여깁니다."
 "두 곳으로?"   "네, 좌병사 영감."
 "어디와 어딘가?" "아마도 한쪽은 사천과 진주를 통해 남원을 친 다음에 북상하여 전주로 향할 것이고, 한쪽은 양산과 밀양을 거쳐 합천을 통해 전주로 가려고 할 것이옵니다."
 이겸수의 대답을 들은 좌병사 성윤문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생각과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왜군이 앞선 전란의 경우와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산포에 결진하여 다시 한 번 울산을 거쳐 경주와 상주를 치고 문경을 넘어 충주를 공략하고 곧장 수원을 거쳐 한양으로 진격할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남원은 이 통제사가 버티고 있는 남해를 거치지 않으면 힘들 것 아니겠는가? 또한 전주를 통한 한양 입성은 왜군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 돌아가는 길인데. 솔직히 왜군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한 번 격파한 적이 있는 문경새재를 넘는 것이 더 편한 길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습니다. 솔직히 지난 전란을 통해 방어시설이 대다수가 파괴된 문경과 충주를 통한 한양 공략이 손쉬울 수도 있습니다. 허나 앞으로 일어날 전란은 앞서 있었던 전란과는 그 양상이 다를 것입니다."
 "왜 그렇게 보는 가?"
 "지난 강화협상에서 왜군은 집요하게 경상도와 전라도를 요구해 왔습니다. 사실 경상도는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장악할 수 있지만 전라도는 다릅니다. 바로 이 통제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죠. 해서 왜군은 남원을 점령해 이 통제사의 배후를 차단하려 들 것입니다. 또한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차지해 왜군들의 보급을 원활하게 하려 할 것입니다. 어차피 전란이 재개되면 명군 또한 대규모로 파병될 것입니다. 왜군이 그것을 모를 리 없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왜군은 전주를 차지한 다음 수원 근방으로 진출해 새로이 전선을 형성하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남해를 거쳐 서해로 이어지는 해상을 장악하여야하고요. 결국 왜군은 이 통제사라는 걸림돌을 없애지 않으면 승산이 없게 되겠지요. 만약 전라도 공략이 성공하면 이 통제사는 그야말로 고립무원 상태로 서서히 괴멸되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 솔직히 난 왜군을 문경으로 끌어들여 승부를 한 번 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던 차였네. 어찌되었든 문경새재는 조선이 지닌 최고의 요새가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허나 왜군은 조선군과 명군의 그런 전략을 간파하고 양산과 밀양 그리고 합천을 거쳐 전주로 진격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길이 피해를 줄이며 전주로 빠르게 진격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아주 그럴싸하이."
 "소장의 생각일 뿐이옵니다. 깊이 담아두지 마시옵소서."
 "아닐세. 영 터무니없다고 여기지 않네. 내 한 번 곱씹어 보겠네." "괜한 말씀을 드려 좌병사 영감의 심기를 어지럽혔습니다." "괘념치 마시게. 오히려 좋은 정보를 들은 것 같아 흡족하이."
 이겸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다시 몇 차례의 문답이 오고갔고, 덕분에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빠르게 기울고 있었다. 
 "소장은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러시게." 이겸수는 인사를 하고 좌병사의 집무실에서 물러나와 밖에 대기 해둔 말에 올랐다. 박차를 가하자, 말이 놀라 풀쩍 뛰어 올랐다가 이내 성문을 향해 달렸다. 다가오는 이겸수를 알아본 성문 수비병들이 그를 위해 성문을 열어 주었다. 성을 빠져 나온 이겸수는 채찍으로 말을 볼기짝을 연이어 때렸다. 말이 기세를 올려 달려 나갔다. 앞서 그림자를 드리운 산봉우리들이 마치 왜군의 대군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기장진으로 향해 달리는 그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규봉  webmaster@yang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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