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자기 길을 안다

 주말이면 늦잠을 자도 될 텐데, 오히려 더 빨리 눈이 뜨인다. 늦잠을 잘 수 없는 광경들이 펼쳐진다. 시골에서의 삶이 좋은 또 다른 묘미는 눈과 귀를 맑게 해 주는 갖가지 풍경과 소리와 냄새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요함을 깨우는 새들의 지저귐이 시끄럽기 보다는 정겹게 느껴진다. 특히 이른 아침에는 참새를 비롯한 박새, 굴뚝새, 곤줄박이, 종다리(노고지리)등 작은 새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소리들이 살아있음을 더 실감나게 만들어준다. 산에서는 뻐꾸기와 산(멧)비둘기의 소리가 정겨움을 배가시켜준다. 
 모처럼 이른 아침부터 부모님과 식사를 하며 새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집 창틀 위에 진을 치고 있는 제비들과 저수지로 날아드는 새들 세상에도 위계질서가 있고 자기들 나름의 살아가는 법칙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김종해의 시를 들여다보자. 새들은 그들이 다니는 길(하늘)에 흔적이 있을 텐데 별들이 가는 길이 있음을 알고 굳이 자신의 길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아는 모양이다.
 밥을 다 먹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비행기 지나가고 난 흔적의 하얀 줄이 까만 전깃줄과 오버랩 되면서 `≠`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람은 새들과 달리 흔적을 남긴다." 나의 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의 흔적을 남기려는 사람과 달리 새들의 세상(자연)은 다르다는 걸 이야기 해 주고 있는 듯 느껴지는 아침이다.

 

땅 냄새

 얼마 전에 들깨 심으려 밭을 갈아 놓았던 자리, 고랑을 탄다. 지난 2월에 거름 뿌려놓고, 비 맞히고, 햇빛, 바람 쐬었더니 꼽꼽하다. 흙 빛깔만 봐도 양분 듬뿍 머금은 색이다. 고랑 타기 위해 삽질하면서 꼬신내(고소한 냄새)를 느껴본다. 도자기하는 사람들은 흙에서 꼬신내를 느낀단다. 밭고랑을 타는 농부도 마찬가지로 꼬신내를 느껴본다. 흙은 마치 그 자리에 들깨 심을 걸 알기라도 하는 듯 고소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다. 
 이완주의 글을 들여다보자. 땅 냄새, 너무 익숙하고 늘 주변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귀한 줄도 모른다. 어디 땅 냄새 뿐 이겠는가?
예전에 연구소에서 한창 아이들과 활동할 때 내가 늘 강조하던 이야기가 있다. "제발 눈과 귀와 코와 가슴을 열어봐라" 핸드폰 같은 문명 기기들에 함몰된 아이들은 자연 속에 있어도 그것에 빠져 있느라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향기가 나도 맡아지지 않는 모습들을 보고 안타까웠다. 이런 감각들이 둔화된 아이들에게 긍정의 자극을 주려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지금의 내 아이 둘 모습에서 새삼스레 놀라고 있다. 멀리 바라 볼 필요도 없다. 가까이 있는 내 아이 역시 핸드폰, 텔레비전에 빠져 많은 걸 놓치고 있다. 더 자극을 주기 위해 애써야겠다.

관조하는 삶

 사전적 의미를 들여다본다.
 관찰(觀察): 사물의 현상이나 동태 따위를 주의하여 잘 살펴봄
 관망(觀望): 한발 물러나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을 바라봄, 풍경 따위를 멀리서 바라봄
 관조(觀照):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미를 직접적으로 인식함

 지난날 교육학을 공부하며 동양고전을 배울 때, 퇴계(退溪) 선생의 시를 정리해봤었다. 다시 끄집어내어본다.

陶山觀物 (도산관물)
蕩蕩春風三月暮 (탕탕춘풍삼월모) 설렁설렁 봄바람 삼월도 저물고,
欣欣百物競年華 (흔흔백물경년화) 싱싱한 온갖 사물들 풍경 다투누나.
山光倒水搖紅錦 (산광도수요홍면) 산 경치 물에 거꾸로 비쳐 붉은 비단 흔들리고,
野色連天展碧羅 (야색연천전벽라) 들 빛은 하늘까지 이어져 푸른 비단 펼쳐놓았네.
鳥勸葫蘆欺我病 (조권호로기아병) 산새(두견새) 소리 호로병 술 권하니 내 병은 없이 여기는 듯하고,
蛙分鼓吹爲私와 (와분고취위사와) 개구리 풍악 울리니 제 몸 위해 움직이네.
乾坤造化雖多事 (건곤조화수다사) 하늘과 땅의 조화 비록 일 많다지만,
妙處無心只付他 (묘처무심지부타) 오묘한 것은 무심함에서 나오니 그대로 맡겨둘 뿐이라네.

 

 欣欣(흔흔): 초목이 싱싱하게 쑥쑥 자라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年華(년화): 1년 중 가장 좋은 철을 가리키는 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선생이 을사사화(乙巳士禍)의 난리 속에서도 학문을 향한 염원을 못 버리고 은거하면서 도산서당 일원을 수양의 도장으로 꾸미고 7언 절구 18수의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지어 자신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자 읊은 시이다. 
 `도산관물(陶山觀物)`은 단순히 사물에 자신과 세상사를 대입시킨 것이 아니라 사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관조하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일상의 주변 사물 속에서 내일을 향한 학자의 고뇌였던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으려는 몸부림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내-존재

 현상학이란`현상과 경험의 의미`를 찾으려는 학문이다. 현상이라는 말은 어떤 객관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식에 의한 경험의 대상이 의식 앞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모습을 말한다. 현상이란 경험이며, 현상학이란 경험인식을 통하여 `사물의 본질 자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인간(사람)을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은 창조된 것도 태어난 것도 아니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시간과 공간에 내던져졌을 뿐이다. 그렇지만,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인 인간은 `내던지는 존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신을 어디로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서 자기 존재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존재Dasein(거기에 있음)` 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인간을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독특한 유형의 존재로 파악하였다.
 또한 인간은 세계와 더불어 살고, 그 안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내-존재`라고 부른다. 어떤 도구를 사용할 때 그것은 단순히 외부의 사물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것이고, 내가 없으면 그것 또한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목적을 위해 사물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그 사물에 얽매일 수는 없다. 우리는 남을 배려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에 얽매인 나머지 타인의 시선을 살피고, 타인들이 하는 대로만 하려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도구에 종속되고 타인의 배려에 얽매일 때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세상의 흐름에 편입되어 그저 그런 `한 사람(das Mann)`으로 살아가게 된다. 도구와 수단의 발전은 인간을 자아의 망각, 즉 존재의 망각으로 이끌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학을 접하며 어떤 사물, 어떤 사람, 어떤 현상을 대할 때 현상학과 결부시켜 생각해보는 습성이 생겨났다. 시 한 편을 읽다가 하이데거가 말하는 현상학에 이입시켜 보게 된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그리고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내-존재`와 일맥상통하는 글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소박한 글 한 편에서 통하는 무언가가 내 가슴으로 밀려든다. 

제 자리에서

 얼마 전,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강의를 하며 `바라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저 바라보는 것인지, 자세히 들여다 바라보는 것인지, 다시 비추며 바라보는 것인지, 어떤 관심의 척도로 바라보는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같은 현상에 직면하더라도 어떤 관심으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강의를 하였지만, 결국엔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선거가 끝나고 지역의 정치를 담당할 분들이 정해졌다. 지역의 여러 현상들에 열려 있는 눈과 귀와 가슴으로 바라봄을 통해 조화롭게 지역주민의 대표 역할을 해 주시되 자기철학을 가지고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다시 시작하는 반의 시간을 좀 더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해 다잡아야겠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아지는 가치를 찾기 위해 애써봐야겠다. 

- 새는 자기 길을 안다 田

전이섭 (田悧攝 / 1976~)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 대학원에서 공예공업디자인, 도쿄학예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교육철학)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의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문화예술교육 외래강사를 역임했다.
일본 유학시절부터 한일 어린이 교류활동을 기획해왔으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에서 의전팀, 마케팅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부산문화재단에서 문화교육, 문화유산, 인문학 사업들을 담당하다가 육아휴직 중에 있으며, 2008년부터 상북면 대석마을에 <문화교육연구소田>을 설립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10년째 운영 중에 있다. 
양산에서는 <NPO 법기도자>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5대째 양산 토박이로 양산의 올바른 문화발전을 갈망하며 함께 지역문화를 공부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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