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보다 `신뢰`가 미덕
변화에 민감한 것도 능력

지식인 조지훈 선생은 <지조론>이라는 수필을 썼다. 그는 지조를 예찬했다. 지조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있냐고 했다. 한반도를 600년간 지배한 유교라는 이데올로기도 지조를 강조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부녀자도 정절을 지켜야 하는 것도 지조 이데올로기다. 그런데 요즘도 지조의 이데올로기가 통용된다. 특히 정치의 계절에는 더욱 그렇다. 처음 몸 담았던 당을 위해서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당의 강령을 지키기 위해 활동했던 그 옛날의 지사들을 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조는 현대사회에는 미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사회다. 돈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사회다. 돈을 벌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강한 토대가 된다. 그렇다면 이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굴러가게 하는 토대는 무엇인가. 바로 신뢰다. 저명한 학자들은 신뢰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설명한다. 자본주의가 가장 번성한 미국에는 신뢰라는 강한 토대가 자리잡고 있다. 반면 한국을 이야기해 보자. 한국은 한눈팔면 코 베가고 모르면 당한다. 기업인들은 정직할수록 실패하기 쉽다. 신뢰받는 정치인과 신뢰받는 기업인이 뿌리 내리기 쉽지 않은 구조다.
지난 선거에도 그렇고 이번선거에서도 지조없는 사람이라는 공격이 먹혀들어간다. 하지만 정치인은 지조보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공약이 공약(空約)에 그치지 않도록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조가 없어도 신뢰가 있는 사람이 현대사회에 필요한 인재다.
현대사회는 지역주민들의 복잡 다단한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조만을 강조하는 전근대적 행태로는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적응하기 어렵다. 더이상 당을 바꿨다는 것을 비난 거리로 삼지 말자. 대신 약속을 지키지 않는 후보를 마음껏 비판하자. 그래야 우리동네 정치인들이 지역주민들을 얕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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