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군 출신, 서강대에서 학생운동으로 제적
법무부 공무원 사직하고 양산에서 학원 운영해 생활

표병호 후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표병호(58) 후보는 충청도 홍성군 출신이다. 홍성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를 반대하는 시위로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끌려가서 비닐봉지로 얼굴을 덮어 씌우고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당시 생각만 하면 끔찍합니다"

그는 홍성군에서 아버지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아버지는 장남 표병호가 편한 삶을 살기를 바랬다. 그러나 아들은 안정적인 삶을 거부했다. "당시 아버지에게 큰 몽둥이로 맞기도 했지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공무원 준비를 했고 3년만에 붙어서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법무부 공무원직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직한다. 청년 표병호는 37세때의 일이다. "당시는 공무원을 정치에 동원하고 그랬어요.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수 없었죠. 아버지의 기대를 또 배반한 겁니다"

그는 다시 홍성으로 갈수 없었다. 그래서 양산에 왔다. 당시 교동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미적분을 직접 가르쳤다. 그러면서 20년을 넘게 양산에 살았다.

이후 양주동체육회 회장직을 맡고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맡았다. 그러던 중 서형수 국회의원의 당선에 1등 공신이 된다. 당시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고향 웅상에서 이장권 후보에게 패했다. 그러나 양주동에서 이겨 당선됐다. 당시 양주동을 책임지던 표병호 후보는 서 후보에게 발탁돼 지역 국회의원 사무실 6급 비서관이 됐다. 그가 오늘날 동면, 양주동 도의원 후보자가 된 배경이다.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굽히지 않는 삶이였다고 할까요. 도의원이 된다면 시민들과 소통해 기득권에 굽히지 않는 의정활동을 펼쳐보겠습니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양산을 제2의 고향으로 서형수 국회의원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한 사람. 그가 이제 현실 정치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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