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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광/장/ 가야진 용신제의 용이 두 번 죽은 사연
  • 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 승인 2018.04.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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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물금에서 원동면으로 향하는 1022번 도로변에는 매화꽃이 지고 벚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운 꽃길을 만들었다. 4월 1일 10시부터 시작된 가야진 용신제를 구경하기 위하여 꽃길을 달려 원동면 용당들길 43-70에 있는 가야진사에 도착하였다. 가야진사는 낙동강 정비사업 때 이전 위기를 맞았으나 현 위치에 존치하기로 국토부가 결정하여 살아남았다. 가야진사는 1983년에 경남도 문화재 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1990년대 초에 대대적인 정비복원 공사를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용당리 당곡마을 주민들은 가야진용신제보존회를 구성하고 용신제의 내용을 고증, 보완하여 1995년 제27회 경상남도 민속 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우수상을 받았다. 1997년에는 경남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다. 가야진사 낙동강에 살던 용은 두 번의 위기를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다.
 가야진 용신제가 열린 원동면 가야진에는 황룡과 청룡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요즘은 스토리텔링이 중요시되고 있는데, 가야진 용신제는 전설의 보고이다. 첫 번째로 용이 죽은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양산고을을 옥당이라 칭할 때의 이야기다. 양산고을 사또가 대구의 경상감사에게 서신을 전하기 위해 한 전령을 보냈다. 
 전령이 가는 도중에 절세가인이 미행하고 있음을 알고 마음이 끌렸다. 해질 무렵 용당에 도착하였고, 그 곳 주막에 숙소를 정하니 아니나 다를까 따라온 미인도 옆방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었다. 전령은 미인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까지 뒤척이다 답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미인이 투숙한 방을 보려고 문을 열었다. 
 바로 그때 마당 한가운데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놀란 전령이 정신을 가다듬고 구렁이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청룡이 대답을 하였다. "저는 황산강 용소에 사는 황룡의 본처입니다. 당신을 뒤따른 이유는 간곡한 청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남편 되는 황룡이 첩을 좋아해 내일 첩이 되는 청룡을 데리고 승천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제가 내일 정오에 황룡과 청룡을 용소에서 싸움을 붙일 터이니, 당신이 내일 아침 일찍 용당장에 가서 첫 눈에 보이는 물건을 구입하여 배를 타고 용소로 와서 두 용이 싸울 때 부디 첩인 청룡을 죽여주길 부탁합니다. 만일 이 약속을 이행하면 당신에게 복이 따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신변에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이 말을 남기고 미녀로 변신했던 구렁이(청룡)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음날 전령은 장터에 가서 첫눈에 보이는 큰 장대 낫을 사 가지고 정오경에 배를 타고 용소로 나갔다. 때마침 강물이 끓어오르면서 황룡(남편 용)과 청룡(첩용)이 강물 위로 솟구쳐 올라 싸움을 하므로 엉겁결에 낫을 내리쳤으나 첩용이 아닌 남편 용을 죽이고 말았다.
 뜻하지 않은 실수로 청용의 요청과는 정반대의 사건의 벌어졌다. 노한 청룡은 남편을 죽인 전령에게 용궁으로 갈 것을 강요했다. 전령은 벙거지와 장대낫 등을 용당의 가야진사 앞 강변에 버리고 수중으로 들어갔다. 이 일이 있은 후 용당마을에는 가뭄이 지속되거나 각종 변고가 발생하였다. 주민들은 용을 달래는 제례를 지냄으로써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가야진사의 낙동강 건너편 마을은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인데, 옛날에 나루터가 있었다. 김해 대동 동대구간 민자 고속도로 밑을 지나면 용산마을이다.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지나면 길은 여차제방으로 막히는데 이 근처에 옛날 용당나루터가 있었다. 
 양산에도 가야진사가 있는 곳이 원동면 용당마을이다. 낙동강을 마주한 마을에 용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두 마을의 용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합해져야만 하나의 완벽한 용이 된다. 양산이 숫룡, 김해가 암룡이란 말이 주민들 사이에 전승되어 왔다. 
 김해의 용산은 누가 보아도 길게 꼬리가 이어지며 용의 머리가 낙동강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산의 형태가 풍수지리적으로 완전한 용의 형국이다. 용이 긴 꼬리를 끌며 머리는 물을 마시러 낙동강에 푹 담그고 있어 신기하다. 가야진사가 있는 양산 쪽의 용은 멀리서 보면 천태산의 줄기가 낙동강을 향해 있지만 용이라는 실감은 김해 용산보다는 훨씬 덜하다. 김해 용당마을에도 조선말까지는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한다. 1955년의 심한 가뭄에는 김해군수가 여기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해와 양산 주민 사이에서 신성하게 숭배되었던 용산은 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인위적으로 단절되는 비운을 맞았다. 2003년 12월 10일 경남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가야진사에서는 가야진용신제보존회가 용신을 위로하는 용신위안고유제를 지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2001년 2월 12일에 착공됨으로써 김해의 용산은 파괴되기 시작하여 용은 두 번째 죽음의 위기를 맞았다. 민자고속도로는 중앙고속도로 대동 분기점 ~ 동대구 분기점 구간을 착공하여 2006년 1월 25일에 완공되었다. 이 고속도로 공사 와중에 용은 또 한 번 죽음에 직면하였다. 공사 중 건설회사 공사 책임자가 용의 저주로 죽었다고 한다.
 용신의 전설이 내려오는 이 지역의 용산이 신대구고속도로 건설로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가 간신히 반쯤 살아남게 되었는데, 여기에 놀랐을 용신을 달래려 고유제를 지냈다. 주민들의 용신위안고유제는 무분별한 개발과 공사로 사라지는 자연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거기에 얽힌 전통문화를 보전하는 중요한 이벤트였다.
 용산의 머리가 닿아 있는 낙동강 속에는 용신이 산다는 용소가 있다. 김해 쪽 용당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용산에 묘를 쓰지 않고 길도 내지 않을 정도로 신성시했다. 신대구고속도로 건설로 용 모양의 용산이 허리가 잘려 나가 단절되는 경천동지할 사건이 발생하였다.
 주민들은 들고 일어나 용산의 허리를 자르는 것을 반대하며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맞서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하며 힘든 투쟁을 하였다. 결국 주민들의 청원이 수용되어 잘린 용산의 허리는 복구되었다. 건설회사는 인공적인 터널을 낸 뒤 그 위에 흙을 쌓아 다시 용산을 연결시켰다. 
 용산이 원래대로의 형상을 갖추게 된 다음 주민들은 그동안 인간의 오만에 의해 훼손된 용산과 낙동강에 수천 년 이어져온 용신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다. 요즘 고속도로는 산을 깎아내어 길을 내면 생태계가 단절되고, 동물의 이동도 불가능해지므로 터널을 만들고 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지날 때 주민들의 필사적 노력으로 살아난 용산을 기억해야 한다. 

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장 관광경영학 박사)  webmaster@yang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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