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Local newspaper)은 대부분 경영이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신문이 독자의 품에 안길려면 상품이라는 개념으로 봐야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대구의 영남일보(1945년 창간)가 휴간됐다가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복간후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보면 이런 견해가 명확해진다. 언론사는 공익을 우선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윤추구를 최우선시 하는 일반기업의 경영과는 차이점을 갖는다. 건전한 여론을 조성한다는 공적인 부분을 고려하면서 이익도 챙겨야 하는 두 마리 까치를 잡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양쪽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영남일보의 경우, 이 회사를 인수받은 사주는 건설, 철강, 환경 관련 회사들을 경영한 분이다. 나름대로 경영에 대한 경험이 많다고 자부할지는 모르지만 언론사를 경영한다는 것은 건설, 철강 경험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공익을 추구하면서도 적자를 내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사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사주의 철학적인 사고와 경험이 기반돼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 이후 살아남은 언론을 중심으로 「지방신문협회」가 결성됐고, 여기서 밀려난 신문들끼리 「지역신문협의회」를 발족했다. 그런데 대구지역의 경우 당시 지역신문 관련 단체가 두 갈래로 나눠졌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지역 언론을 도와주고 싶어도 두 단체가 있어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이를 보다 못한 직원들과 노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 앞의 두 단체가 경영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반면 대구의 「지역신문협회」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결성돼 지역신문 발전방안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추락하고 있는 지역신문이라는 비행기 안에서 편안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날개에 구멍이 난 부분에 힘을 모아 막아야 한다. 신문시장 전체가 어렵고, 특히 지역신문의 상황은 매우 어렵다. 대부분 지역신문은 점유율이 매년 중앙지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 보급소가 폐쇄되거나 중앙지에 끼워 넣는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국내 정치 및 사회 구조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지방지를 외면하는 주민들을 원망할 수도 없다. 몇 년전 어느 지역에선 기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언론사는 퇴출시키자는 결의가 있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처방전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역신문이 왜 이렇게 됐는가? 신문사 난립의 제도상 문제점은 접어두고, 재미동포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역신문의 도움이 없으면 주지사나 의회의원 등 정계에 진출하기 사실상 어렵다. 지역민들은 워싱톤이나 뉴욕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Washington Post」나 「Newyork Tims」는 지방에서는 인기가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 지역신문은 기자들이 지역민 생활속에 들어가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주민들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 지를 직접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오래된 과거사를 들추어 내 롱타임으로 지루하게 싣는 기사는 없다. 유능한 기자가 필요한 대목이다. 우리도 지역신문을 바라보는 시민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자면 지역신문에 대한 지역인들의 애정이 있어야 한다. 또 사주나 편집진의 입맛에 맞는 포멧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짧고 간결한(short and concise) 기사로 정보 전달에 역점을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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