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제가 죽고 무능한 호해가 왕이 되면서 조고가 권력을 장악한 진(秦)나라는 극도로 부패했다. 그러자 초(楚), 연(燕), 한(韓), 위(魏), 조(趙)나라 제후들이 자기 나름대로 세력을 확장면서 진나라는 멸망하고, 전국에서 영웅 호걸들이 벌때처럼 일어났다. 초(楚)의 항우와 한(韓)의 유방은 통일대업의 야망을 품고, 17년간 전쟁을 하다가 유방이 통일대업을 거머쥐었다. 그렇다면 몇 천근이나 되는 가마솥을 번쩍 들었다고 하여 천하장사의 대명사가 된 항우는 왜 유방에게 패했을까? 그 이유는 전략.전술을 짜는 군사(軍師)의 지혜에서 찾을 수 있다. 항우는 범증을, 유방은 장량을 군사(軍師)로 두었다. 장량은 장수 출신에 학문이 높지만 범증은 산속에 은둔한 한낱 선비였다. 해서 범증은 장량을 능가하는 전략.전술을 내놓지 못했다. 항우의 장수는 계포, 종리매, 항백, 영포, 한신 등이고, 유방의 장수는 왕릉, 번쾌, 소하, 조참, 주발 등이다. 맹장 번쾌의 부인 여수(呂須)는 유방의 부인 여안(呂顔)의 동생이다. 그런데 한신은 항우의 인정을 받지 못해 직급이 낮은 집극랑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장량은 한신을 진평과 함께 유방쪽으로 유인하는데 성공했다.

한(漢)군을 총지휘하는 대장군이 된 한신은 초(楚)군과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하여 유방이 통일대업을 달성하면서 한신은 장량, 번쾌, 소하, 진평과 함께 일등공신이 됐다. 한신의 전술은 특이하다. 항우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어 항우가 열을 받게 만든 후 지는 척 도주하면 성질이 급한 항우는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공격하다가 적의 함정에 빠져 패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한신이 덫(함정)을 치는 방법이 늘 달라 싸울 때마다 항우는 당하기만 했다. 유방도 장량과 한신의 말을 듣지 않고 혼자 결정하여 항우를 공격하다가 크게 패한 후에는 늘 장량과 한신의 전략에 따랐다. 특히 장량은 첩자를 이용한 간계로 늘 항우를 곤경에 몰아 넣었다. 항우가 범증을 죽게 만든 것도 장량의 간계 때문이었다. 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결정하는 최후의 전투에서 80만 대군이 전멸, 생존한 8천 군사로는 유방의 100만 대군을 이길 수 없자 칼에 맞은 상처가 깊어 항우가 자결할 때의 나이는 32살이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이 전투에서 나온 말이다. 항우의 패잔병들은 사방에서 유방의 100만 대군에게 포위되어 전의를 잃은 상황에서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처자식을 그리워하며 향수에 젖어 있는데, 달밝은 가을 밤, 바람에 실려오는 구슬픈 피리소리와 함께 애닲??nbsp;노랫소리가 들리자 항우의 패잔병들은 모두 도주하여 유방의 진영으로 넘어가면서 항우가 죽자 초나라는 멸망했다. 천하장사 항우도 때가 되면 허물어지거늘 다른 장수인들 어찌하라. 유방은 통일대업을 완성하자 고민이 깊어졌다. 백전백승한 한신(韓信)을 그냥 두었다가는 향후 자신의 세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려 제(齊)왕에서 다시 초(楚)왕으로 이리저리 바꾸더니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유방은 한신은 후환꺼리라 죽여야 한다는 황후의 말에 한신은 미앙궁 뜰 아래에서 억울하게 참수형을 당했다. 이때 한신이 한 말은 토사구팽(?死狗烹)이다.  

이 무렵 한(韓)왕 희신은 반역하여 북쪽 오랑케 묵돌과 연합하여 한(漢)의 유방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희신은 장량의 오대조 할아버지 때부터 섬기던 한나라 왕실의 후손이라 장량으로서는 심기가 매우 불편한데다가 한신이 참수를 당하는 모습을 보자 장량은 이렇게 깨달았다. 「먼저 나를 알고, 둘째는 남을 알고, 끝으로 때를 알자」 이 말은 17년전 진시황 29년에 박량사 벌판에서 창해공으로 하여금 시황제를 죽일려다가 실패하고, 하비 땅 산속에 숨어 살 때 자기에게 학문을 가르쳐 주던 스승 황석공이 한 말이다. 벼슬을 거부한 장량은 산속에 은둔하자, 유방은 통일대업의 일등공신 은혜를 잊지 못해 장량에게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조정에 나와 줄 것은 간청했지만 장량은 거절하고 산속(方圓閣)에 살다가 황석공과 처음 만났던 그 곳에서 죽었다. 그는 죽기전 아들 벽장에게 권력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면서 조정에 나가지 말 것을 당부했다. 역사를 모르는 정치인은 나라를 망친다. 옥중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장량의 이 깨달음을 한 번쯤 되새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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