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재공 이겸수 선생 남강서원 향배, 청소년 역사교육 유생체험 등
양산웅상회야제 축제 프로그램에 통신사 재현행렬 기획 필요

충숙공 이예 선생의 성손 이학락씨가 조선통신사 가마를 타고 있다. <참고사진>

조선통신사 이동 행로는 한양을 출발하여 양재-판교-용인-양지-죽산-무극-숭선-충주-안보-문경-유곡-용궁-예천-풍산-안동-일직-의성-청로-의흥-신녕-영천-모량-경주-구어-울산-용당(웅상읍)-아월역(정관읍 월평)-송정역(동면 여락리)-동래-부산항에서는 뱃길을 이용했다.

통신사는 조선이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했던 공식 대외사절단을 말한다. 조선 통신사는 조선과 일본 양국의 공식 국가 외교사절단이었다. 통신이란 신의를 나눈다는 선린우호의 상징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시작이었다. 

1403년(태종 3)과 1404년 조선과 일본이 각각 명나라의 책봉을 받고 대등한 처지의 상호간 사절로 조선은 `통신사`를, 일본은 `국왕사`를 파견했다. 보빙사는 답례로 외국을 방문하는 사절이고, 회례사는 사신을 보내 왔을 때 그 답례로 파견하는 사절을 회례관, 통신관, 경차관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1428년 5월 7일, 일본이 사신을 보내 막부 5대 장군 아시카와 요시모치가 1월 18일 사망했음을 조선 정부에 알려왔다. 7월 15일 또 다시 아시카와 요시모치의 사망과 그의 아우 아시카와 요시노리가 장군직을 계승했음을 조선정부에 알렸다. 조선에서는 이에 대해 교린의 예로 부의를 전달하고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통신사를 파견했다. 그해 12월 7일 경북 의성출신 정사 대사성 박서생과 이곳 출신 대호군 이예(李藝)를 부사로 한 통신사 일행이 조선국왕의 국서와 예물을 들고 사행에 나섰다. 

통신사는 정사, 부사, 종사관의 삼사와 화원(畵員), 의원(醫員), 역관(譯官), 악사(樂士) 등 총 4백 명에서 많게는 오백 명이었다. 일행을 책임지는 건 삼사였다. 정사는 통신사의 총책임자로 조선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부사는 정사를 보좌하며 기록을 담당하는 문관 출신이 종사관으로 나섰다.

1460년 10월 8일, 통신사를 태운 배가 풍랑을 만나 조난을 당했다. 이때 정사 송처검과 부사 이종실등 100여명이 사망한 참사였다. 약 4년이 지난 후, 일본국왕이 조선국왕 세조에게 통신사 사망소식을 정식으로 알려왔다. 일본국왕은 통신사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교토에 있는 천룡사란 절에 정사 송처검과 부사 이종실의 명복을 비는 수륙대제를 올리게 했다. 

세종대왕 때부터 40여 차례에 걸쳐 정사부사로 교토 유구국과 대마도를 왕래하며 양국 간 친선과 조선의 포로 667명을 쇄한 했고 최초의 조약인 계해약조와 일본인의 조선입국 허가에 준하는 문인제도를 정립한 이예와 아들 종실 부자 2대에 걸쳐 통신사로 활약했던 것이다. 일본 교토 청룡사에서는 지금도 매년 10월 8일면 이예, 이종실 부자와 통신정사 등 순국사절 1백여 명의 수중고혼들의 명복을 비는 제를 올리고 있다. 

부자통신사 이예는 웅촌의 석계서원에 위패를 모시고 있고,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과의 강화교섭에서 사명대사와 함께 역사적으로 큰 공을 세운 죽재공 이겸수 선생 위패는 웅상읍 주남리 남강서원에서 모시고 있다. 

지금까지도 한국과 일본 양국에는 통신사들이 머물며 지나갔던 육로와 해로에 수많은 흔적들이 남아 있고 그 유적과 기록물들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최근까지 `조선통신사 길`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노력해왔던 것이다. 통신사 삼사의 배출지인 경북 의성에 이어 영천, 울산, 부산에서도 `조선통신사 재현행렬` 행사를 계속해 오고 있다. 이러한 지역들은 통신사의 학술적 연구와 이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통신사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지역축제행사로 자리매김을 하는 중이다.  

축제(祝祭: Festivals)란 개인 또는 공동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결속력을 주는 사건이나 어떤 시기를 기념하는 의식적 행위다. 우리민족의 축제 발생 시기는 고대 부족국가 시대부터였다. 사람들이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 음주가무를 즐기는 종합예술의 신성한 제천의례 행사였다. 고대인들은 축제를 통해 액운을 없애고 복을 불러 풍요와 건강을 유지하는 우리민족의 신앙적 사상이 담겨 있었다. 

전통적인 축제가 근대산업사회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오늘날 우리는 과학과 이성의 발달로 새로운 개념의 축제 한마당이 보편적인 형태로 열리고 있다. 과거 농경문화 시대에는 제의적 성격과 공동체의식을 공유하는데 목적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축제들도 해당 공동체사회의 문화와 전통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의 축제는 제(祭)보다 축(祝)이 앞선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축과 제가 지역공동체의 하나인 축제문화라는 사실이다. 축제를 통한 지역공동체 만들기는 사회의 심리적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데 이바지해 왔고 또 사회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1990년대 지방자치시대를 도입한 이래 지역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법으로 수많은 지역축제들이 신설됐다. 지자체에서 시민 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대부분의 축제는 사회적 문화행사를 기념하는 축제들로 다양하게 모색되어 왔다. 그 지역의 고유한 역사를 살리기 위한 인물을 포함하거나 특산물들로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여흥과 체육대회 등을 열고, 볼거리 먹을거리를 선보여 왔다. 그 지역의 정체성을 살린 역사와 문화적가치의 고증작업을 거친 의식행사나 유무형의 문화재들과 연계한 볼거리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법에 축제를 활용했다. 특히 지방자치의 경제 활성화 효과를 내기위한 특산물축제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원시공동체나 농경시대의 축제는 생존과 생산의 공동체 원리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과거처럼 생산양식이 봉건적이었을 때는 전통지향성과 공동체의식이 강했으나 지금은 근대화가 가속화되고 발달된 산업사회는 인간 생존의 파편화로 공동체 의식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러한 문화에서 행해지는 축제를 상품으로 인식하려는 경향과 진행자체도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생활에서 유희본능을 충족시키는 다양한 매체들로 하여 사람들의 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또 공동체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점은 축제의 주체와 규모와 구성이 문제다. 축제의 성격이 어떤 성격의 축제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의 지역축제는 문화보존 차원의 지역민의 일체감 조성과 경제적 의의, 관광 상품화 효과의 기능을 가지고자 한다. 그러나 이 모두가 다 충족될 수는 없다. 지역축제의 중요한 의의는 지역민들의 공동체의식을 고양시키고 생산의 노동을 뒷받침하는 유희의 공간을 제공하는데 있다. 지역 곳곳에서 축제는 열리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축제가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대부분 관(官)이나 전문 문화단체가 주관하는 축제에는 시민들은 관람객일 수밖에 없다. 그 지역의 속살을 속속들이 들어낼 수 있는 지역민들이 주체가 되는 창의적인 축제가 오히려 공동체의식을 가질 수 있어 축제의 예술성이나 완결성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있다. 

지역축제는 역사적인 자산을 문화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기획과 운영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 전문인들의 프로화 된 프로그램보다 주민들의 정서가 더 중요하다. 훌륭한 축제는 기획 상품화의 성격보다는 지역민들의 정서가 우선이니 지역성을 어떻게 살리는가는 기획자들의 운영에 달렸다.

체육관식 축제나 운동회식 축제 또는 문화예술전문가들이 아닌 주민들이 기획하고 실행하는 지역축제의 문화주권을 가진 독자적 가치로 존재하고 싶다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축제이름은 그대로 하되, 주민화합 차원의 공동체 문화 창출을 위한 주요 테마(tema)가 설정되어 다양한 프로그램보다 축제를 상징하는 이미지 주제와 상징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축제를 통한 지역문화의 건전한 보급은 세대 간 격차를 좁히고 함께 공유하는 활기찬 분위기 조성은 물론이고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축제의 상징과 이미지를 담은 축제의 주요 테마가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이미지 주제가 설정된 다양한 프로그램은 축제의 지역성과 전통성을 살려나가는 전략이 될 것이다. 마을잔치의 유희적 축제나 관광을 연계한 대외적인 행사형 축제거나 지역주민의 잔치임에는 틀림없지만 축제기획 운영방향에 따라 문화 지향적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통신사기록물이 세계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문화적 부가가치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통신사 길`과 `통신사 재현행렬`은 충분히 재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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