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대는 양산팔경 중 제7경으로 임경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이 한반도 지형 모양을 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신라시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낙동강을 유람하다가 이곳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천하제일의 거울을 대함과 같다 하여 `임경대(臨鏡臺)`라는 세 글자를 바위에 새긴 뒤 화제 일대를 유람하면서 화제팔경시(花濟八景詩)를 남기기도 했다.

임경대 글자는 세월이 흘러 그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마모되어 확인 할 방법이 없다. 화제팔경시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최근 오봉산 임경사의 거대한 바위 절벽에 고운 선생의 후손들이 바위에 `임경대`라는 글자와 시를 적어놓아 그 유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임경대` 한시 칠언절구를 한글로 번역한 경우는 제 각각으로 약간씩 다르다. 그런데 양산시에서 주도한 유적 성역화 사업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문제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임경대 시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은 크게 세 군데에 있다. 임경대 주차장에 크게 세운 똑같은 안내판이 두 곳에 있고, 임경대로 향하는 도중에 세워진 시비, 그리고 1022번 도로변에 세운 옛 임경대 등이다. 먼저 주차장 안내판에 있는 임경대 시의 번역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烟巒簇簇水溶溶(연만족족수용용) 안개 낀 봉우리 빽빽하고 물은 넓고 넓은데
鏡裏人家對碧峯(경리인가대벽봉) 물속에 비친 인가 푸른 봉우리에 마주 섰네
何處孤帆飽風去(하처고범포풍거) 어느 곳 외로운 돛대 바람 싣고 가노니
瞥然飛鳥杳無?(별연비조묘무종) 아득히 나는 저 새 날아간 자취 없네.

주차장에서 낙동강변 임경대 정자로 가는 도중의 임경대 관련 옛 선인들의 시비 중 임경대의 한글 번역은 안내판에 나와 있는 것과 사뭇 다르다. 또 다른 문제는 최치원 선생의 시비를 가장 큰 돌에다 새겨야 하는데, 중간 정도 크기의 돌에 새겨놓았다. 주인공의 시비를 볼품없는 돌로 만들고, 다른 중요하지 않은 인물의 시비를 오히려 더 크게 만든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지금이라도 빨리 커다란 시비를 새로 만들어 대치하고, 최치원 선생의 동상도 건립하면 좋을 것이다. 삼천포 남일대해수욕장에는 후손들이 세운 동상이 있다.

뾰족뾰족 안개 낀 산봉우리 질펀히 흐르는 물 / 거울 속 인가에서 푸른 산봉우리를 마주 보노라 / 어느 곳 온 돛단배 바람에 배불러 떠나가는데 / 순식간에 나는 새들이 아득히 눈앞에서 사라진다.

1022번 도로변에 세워진 돌축대 위의 임경대 정자에 걸린 임경대 시의 한글판은 다음과 같은데, 문제점이 더욱 많다. `뾰족?`에서 현재 일본에만 쓰는 반복을 의미하는 특수 기호 `?`가 사용되고 있어 어처구니가 없다. 더구나 오타도 발견되어 한심하다. `푸늘봉`은 `푸른봉`의 오기로 보인다.

산은 기묘하게 뾰족? 하고 물은 가득하게 늠실댄다 / 거울 속에(낙동강) 사람의 집이 푸늘봉을 마주 대하는데 / 어느 곳에 돛 단 배가 바람을 가득 안고 떠나는고 / 문득 나는 새가 아득하게 자취없이 사라지네.

`뾰족?`이라는 문구에 나타난 ?기호는 한자 문화권에서 쓰이는 반복 부호로, 앞 한자와 동일한 한자를 반복할 때 쓰는 글자이다. 이전에는 한자로 보았지만 현재는 한자로 보지 않고 부호로 본다. 반복 기호 자체는 본디 중국에서 사용된 것으로, 은나라 시절부터 기록이 등장한다. 한국에서도 비석이나 편지, 격문 등에서 발견된다. `?`기호는 同(같을 동)의 다른 자형인 동(仝)이 변형된 것. 일본의 영향으로 구한말에서 일제시대 활자 매체 등에서 사용된 예가 있다. 또한 현대에 들어서까지 정서법에 해당 부호를 사용하는 나라는 오직 일본뿐으로 타국에서는 사라졌다. 친일 청산을 부르짖는 시대상에 역행하는 번역본이라 할 수 있다. 

부산광역시는 2011년 08월 23일에 해운대구 우 1동 710-4 동백섬의 맨 꼭대기에 조성된 고운 최치원 유적지 공원 중앙에 최치원 선생의 시비를 건립하였다. `가야산 홍류동`(오른쪽 편), `양산 임경대`(왼쪽 편)라는 제목의 한시는 노산 이은상 시인이 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병기하여 오석에 세로로 함께 새겨놓았다.

메뿌리 웅긋중긋 강물은 늠실늠실 / 집과 산 거울인 듯 서로 마주 비치는데 / 돛단배 바람 태워 어디로 가버렸나 / 나는 새 어느 결에 자취 없이 사라지듯.

임경대 주차장 입구 두 군데에 세워진 임경대 안내판에는 최치원 선생에 대한 해설, 한시와 번역문, 임경대 지도와 사진이 있는데 해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경대(臨鏡臺)는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정자이다. 일명 고운대(孤雲臺), 최공대(崔公臺)라고 하는데, 황산강(현 낙동강의 옛 이름) 서쪽 절벽위에 있다. 벽에는 최치원의 시가 새겨져 있었으나 오래되어 조감하기 어렵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시만 전할 뿐이다. 최치원은 신라시대의 학자이며 경주 최씨의 시조이다. 868년에 12세로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 874년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여 선주표수현위라는 벼슬을 받았다. 879년 황소의 난 때에는 반란자를 치기 위해 선동하는 글인 토황소격문을 지어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당대 명필가로 글씨를 잘 썼으며 신라 최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현재의 임경대가 새로 건립되기 전 임경대 정자 역할을 했던 구 임경대는 임경대 주차장과 가까운 1022번 지방도로변에 있다. 돌로 축대를 높이 쌓아서 목조로 정자를 만들었다. 정자 안의 지붕 쪽 벽에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주요 내용은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산 72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말(서기 875년경)에 고운 최치원 선생이 남주(南州)에 유상(遊賞)하실 적에 이곳에 머물다 간 곳이라 하여 양산군지(梁山郡誌)  고적조(古蹟條)에 `임경대 일운(一云) 최공대(崔公臺) 재군서(在郡西) 황산강상 층암절벽지상 최고운 유상지처야(遊賞之處也) 금유지완연(今遺址宛然)`이라 기록되 있음은 물론 동국여지승람 양산군 고적조에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해동의 문장가이며, 대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겼던 분이라 이곳에 당도하니 저만치 강물이 맑고 깨끗하여 천하의 거울을 대함과 같다 라고 하여 임경대라 칭하고 다음 칠언절구의 한시와 함께 이 지방 화제팔경을 남겼으니 낙동강 문학의 원조가 되고 남으리.` 임경대 시비의 통일성이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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