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조정` 숙의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봤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재개를 보도한 어느 신문사의 헤드라인이다. 시민참여단이 한 달 정도 숙고한 끝에 나온 결정이다. 숙의민주주의로 불리는 이번 시도가 한국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는 해법이 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관점이었다.

숙의민주주의(熟議民主主義)는 `deliberative democracy`의 번역 용어로서 심의민주주의(discursive democracy)라고도 한다. 숙의민주주의는 숙의(deliberation)가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형식이다. 이 제도는 합의적 의사결정과 다수결원리의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숙의민주주의는 민주적 결정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단지 투표에서 나타나는 선호도의 종합이 아니라 실제적인 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간주한다.

집단지성의 발로라는 지적도 많이 나온다.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은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협력 하거나 경쟁해서 지식을 더욱 고도화 하여 얻는 집단적 지능을 말한다. 집단지성은 편재성, 지속성, 실시간 상호 조정성, 실천성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숙의민주주의든 집단지성이든 결국 다수결원칙이 준용되는 제도다. 인간 집단의 분포도는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50점 정도에 가장 많이 모이게 마련이다. 50점짜리 사람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제도다. 100점짜리 전문가는 끌려가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 중심의 민주주의라는 제도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세계에서조차 다수결원리를 떠받드는 `지적 포퓰리즘`이 성행하고 있다. `집단지성`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팔면서 눈앞의 이득에만 매달리고 있다. 자신의 신념이나 양심은 온데 간데 없다. 대세나 유행이나 이득을 따지는 `여론 맞춤형`지식인들의 사회가 되고 말았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꼴이다.

인간의 지성도 양날의 칼이다. 서양의 중세시대에는 인간의 지성을 부정 했다. 인간은 욕망덩어리이기 때문에 지성 보다는 욕망에 의해 행동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근대철학의 혁명을 일으킨 데카르트에 의해 지성이 대두되게 된다. 모든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지혜가 충만했다. 하나님은 아담이 생물의 모든 이름을 짓게 하신다. 이 세상에는 40만 종 이상의 생물이 있다고 한다.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옥스퍼드 사전에 수록된 단어의 수가 십만 단어를 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복 받은 인간이 죄를 짓자마자 인간지능은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어느 목사 사모님이 임신을 하게 됐다. 기쁜 마음으로 자녀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를 숙고하게 되었다. 이 이름도 떠 올리고 저 이름도 짓다가 보니 무려 대학 노트 3권의 분량이 되었다. 첫딸을 순산한 부부는 어느 이름을 택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할머니의 선택은 `대순`이었다. 친구들은 `순대`라고 놀리고 있다는 에피소드다.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1970년 4월 14일 전 세계가 숨을 죽이고 아폴로 13호에서 날라 온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계선의 탱크가 고장 난 것이다. "사령선을 폐쇄하라". 우주 비행사들은 공기가 바닥 난 사령선을 폐쇄하고 착륙선으로 이동했다. 사고가 나자마자 NASA에서 결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어떻게 비행사들을 무사히 돌아오게 할 것인가에 모아졌다.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전 국민에게 호소했다. "모든 미국민들이여, 그리고 인류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여,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그 외는 방법이 없습니다. 간절히 기도해 주세요."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국가와 인종을 떠나 모두 기도했다.

지성인들은 지성의 몰락과 철학의 빈곤을 일찍이 예측했을까. 근대 학문의 대부(代父) 막스 베버는 지식인 특유의 `내적 자질`을 언급했다. 천직으로서의 소명의식, 구도자적 겸허함, 섣부른 진리에 대한 금욕적 경계, 사실판단에 대한 무한책임 등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이런 정신과 문화가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성공한 권력은 언제나 신(神)과 친했다." `신무기 돈`이라는 에우젠 키로비치의 책을 소개하는 메인타이틀이다. 476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서로마제국에 비해 동로마 제국은 1000년 이상 명맥을 유지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제국의 중심종교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케도냐아의 왕 알렉산더와 몽골제국의 창시자 징기즈칸은 정 반대였다. 오로지 군사, 경제, 영토 확장에만 국력을 쏟았지만 참담한 실패였다.

"요즘 숙의민주주의란 말이 유행입니다. 전제조건이 있겠지요.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관용이 그겁니다." 어느 방송국 저녁 메인 뉴스의 클로징 멘트다. 무슨 일이든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겸손으로 숙의하고 기도하며 결정해야 한다. 최선(最善)은 하나님의 몫이더라도 우리는 차선(次善)의 길이라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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