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세기 건국 금관국주 김수로, 철기제조 기술뿐만이 아니라 철 생산성이 높은 고품위 철광석 탐지 기술 보유 했을 가능성 매우 높아. 국내 최고의 철광석 산지로 꼽혔던 물금(勿禁)지역에는 42∼50%에 달하는 고품위의 철광석 풍부. 결국 김수로 세력이 양산 물금과 원동 지역을 선택한 것은 고품위 철광석이 풍부하다는 탐사 결론에 따른 필사의 선택.

 

덩이쇠

금관국이 건국 직후부터 신라에 합병되는 6세기 중반까지 줄기차게 제철관련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금관국의 건국세력인 김수로와 건국 집단 세력이 철기제작과 관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철 기제작술만 따졌을때 그렇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철기 생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이 필요하고, 그 철은 철광석의 제련을 통해 만들어 진다. 때문에 금관국 입장에서 보면 철기 제작의 원료인 철광석의 확보는 초기 금관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해야할 전략물자가 분명했을 것이다. 따라서 김수로 세력은 그들이 세울 나라의 후보지로 철광석이 풍부하게 매장된 지역이 1순위였을 것이다. 이는 김수로 세력이 땅속이나 암반 속에 매장된 철맥을 외부에서 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탐사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 남부에서 가장 철광석 매장량이 풍부한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는 김해, 부산, 양산 지역을 금관국의 건국 최적지로 선택하고 선제적으로 점령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수로 세력은 어떻게 땅 속 혹은 암반 속의 철광석의 매장을 첨단 탐사기기도 없었던 기원 전후 1세기 무렵에 알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현재의 지질 및 제철관련 학자들도 1500년 전에 금관국 제철관련 기술자들이 어느 지역에 얼마 만큼의, 어떤 품질의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었는지 알았는지에 대해서 놀라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철광석은 철의 함유량이 40%이상 돼야만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현재보다 제련기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1500여 년 전의 금관국 기술자들이 철광원석으로부터 적정수준 이상의 철을 생산해내려면 적어도 철 성분 함유량이 70%이상은 되어야 당시로서는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따라서 고품위 철광석을 찾아내고 채굴하는 기술이 어쩌면 제련기술 및 제철 기술보다 더 중요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과연 금관국 기술자들은 어떻게 철광석, 그것도 고품질의 철광석이 어느 지역에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여기에 대한 힌트를『삼국유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만어산(萬魚山)은 옛날의 자성산(慈成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 이것은 마땅히 摩耶斯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魚를 말한 것이다.]이니, 그 곁에 가라국(呵?國)이 있었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바닷가로 내려와서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이가 바로 수로왕(首露王)이다. 이때 국경 안에 옥지(玉池)가 있었고 못 속에는 독룡(毒龍)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萬魚山)에 나찰녀(羅刹女) 다섯이 있어서 독룡과 왕래하면서 사귀었다. 그런 때문에 때때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4년 동안 오곡(五穀)이 익지 못했다. 왕은 주문(呪文)을 외어 이것을 금하려 했으나 금하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부처를 청하여 설법(說法)한 뒤에 나찰녀(羅刹女)는 오계(五戒)를 받아 그 후로는 재앙이 없어졌다. 때문에 동해의 물고기와 용(龍)이 마침내 화(化)하여 골짜기 속에 가득 찬 돌이 되어서 각각 쇠북과 경쇠의 소리가 났다."

위 내용은 『삼국유사』 탑상 제4편에 나오는 어산불영(魚山佛影) 기사이다. 여기에 내용 중에 "때문에 동해의 물고기와 용(龍)이 마침내 화(化)하여 골짜기 속에 가득 찬 돌이 되어서 각각 쇠북과 경쇠의 소리가 났다."라는 내용이 주목 된다. 실제 만어사에 흩어져 있는 종석들을 두들겨 보면 일부에서 분명 쇳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돌에 어떤 특정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바로 철과 구리일 것이다. 실제 만어사의 스님들은 종석이 소리가 나는 것에 대해서 구리 성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돌의 이름이 종석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구리보다는 철성분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수로대왕은 만어산 일대에 존재하는 암석에 철광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건국초기 주변지역의 철광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만어산 일대를 선점하고 있던 토착세력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표현한 것이 위 어산불영 기사가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위 기사를 정리해보면 초기 철 기술을 보유한 김수로 세력이 금관국을 건국한 이후에 원활한 철광석공급루트를 찾지 못해 4년간 백성들의 식생활을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제철산업을 지탱해줄 수 있는 새로운 철광석 부장지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만어산과 인근 양산의 원동, 물금 지역을 무력을 통해 복속시킨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료된다. 

복천동고분군.

금관국을 건국한 김수로 세력은 철기제작 기술뿐만이 아니라, 원재료인 철광석 탐지는 물론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경제성을 만족시키는 철 함유량까지 비교적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을까? 힌트는 앞서 언급한 대로 위 어산불영 기사 속에 있다. 당시 금관국이 보유했던 철광석 탐지 기술 중 하나는 소리였을 것이다.

쇠는 강도에 따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우리 전통 악기 중 편경이 바로 그런 원리로 소리를 낸다. 우리는 간혹 냇가에 돌을 던지다가 간혹 쇳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경우를 접할 때가 있다. 이는 말 그대로 돌 속에 금속 성분 함유량이 높은 탓이다. 

만어사에 흩어져 있는 종석은 그 이름대로 두들기면 쇳소리를 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만어사의 종석에 금속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철 성분을 많이 포함한 철광석 원석은 그 소리부터 일반 암석과 다르다. 이런 차이를 이용한 악기가 바로 국악기 중에 석부(石部)에 속하는 유율타악기(有律打樂器)에 속하는 편경이다. 현재처럼 발달된 분석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암석이 내는 소리를 통한 철광석 분류는 어쩌면 그때 당시로서는 최고의 하이테크기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관련 학자들에게 문의한 결과 철광석을 포함한 원석의 소리와 무게 혹은 비중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철성분의 존재 여부는 물론이고 철광석의 품질까지도 어느 정도 측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 필자는 공학도출신으로 대학학부시절 꽤나 많은 실험과 관측관련 기기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물금지역에 존재하는 철광산에서 채취한 자철광으로 테스트해 본 결과 간단하게 자석 또는 무게, 소리, 물에 넣어 봤을 때 분류가 가능하였다. 

앞서 연재를 통해 철광석이 풍부한 스카른형 또는 이와 유사한 철광상의 모암이 안산암계열이라는 것을 밝혔다. 안산암계열은 대부분 검은계통이나 짙은 회색계열의 색을 뛴다. 그 만큼 철광석을 함유하고 있을 가능성 큰 암석은 색깔로 구분이 쉽다는 점이다. 여기에 소리와 무게를 더하면 현재의 분석기술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1500여년 전의 금관국 기술자들은 고품위 철광석을 찾아내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굴착기술이 없었던 금관국시대 철광석 탐지 기술자들은 주로 육안에 의존해서 철광석 매장 지역을 탐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주요대상은 산위에 돌출된 거대 암릉지대 혹은 강변의 단애지역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암반을 수직 또는 깊은 심도로 굴착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땅속에 매장된 철광석을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위 혹은 강변에 노출된 암석 중에서 철광석을 채취해 철을 제련하는 편이 더 용이했을 것이다. 

부여 혹은 북부여에서 철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김수로와 금관국 세력은 북방세력 또는 고구려의 압력으로 인해 남하 결정을 하게 되고, 이에 수차례 해양 원정을 통해 자신들의 새로운 근거지를 물색하던 중에 광범위한 철광부존 지역 중에서 육안으로도 쉽게 판단되는 김해 및 양산 지역을 선택한 것으로 이해야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해, 양산, 부산 지역은 광범위한 스카른형 또는 유사한 철광상을 가진 지역이다. 

1500여년 전 맨눈과 맨손으로 철광석이 풍부한 지역을 찾아내는 것도 기적같은 일이지만 그 철광석 가운데에서 품질 50%이상의 고품위 철광석을 가려내 채취하는 것 또한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김수로 세력이 금관국 영토로 양산을 염두에 두고 점령한 것은 첨단 철광맥 탐사기술의 개가로 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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