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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출신 백수회 선생은 왜국에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 고독한 마음을 시편이나 가사로 글을 지었다. 오늘날 한시 11수, 서적 1권, 편지 1통, 국문시가 4편이 전해오고 있다. 시가 4편은 국문학사에서 중요작품으로 거론되고 있다. 박인로, 김상헌의 작품과 비교해 보기로 한다.국문시가 4편은 도대마도가(到對馬島歌), 재일본장가(在日本長歌), 단가(短歌), 화경도인안인수가(和京都人安仁壽歌)로 모두 일본에 억류되어 있을 당시 고국에 대한 우국충정의 내용을 담고 있는 단편의 가사(歌辭)들이다. 재일본장가(在日本長歌)는 술회가사(述懷歌辭)로 백수회 선생의 나라를 위한 단심(丹心)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효심(孝心)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해운대 여윈 날에 대마도 돌아들어 눈물 베서고/ 좌우를 돌아보니 창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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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2.2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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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는 농림부의 ‘농촌 신활력 플러스사업’의 중앙공모 2020년 신규지구에 최종 선정되는 경사가 있었다. 이 사업은 총 사업비가 70억 원으로 국비 70%인 49억 원, 지방비 30%인 21억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방비 분담은 경남도비 9%인 6억 3천만 원, 양산시비는 21%로 14억 7천만 원을 투입하여 내년부터 총 4년간 진행되는 사업이다. 농림부가 주관하는 일반농산어촌 개발사업은 전국의 각 지자체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최종 선정되는 인기사업이다.‘농촌 신활력 플러스사업’은 향토자원을 육성하고 지역개발사업 등으로 마련한 다양한 지역 자산과 민간조직을 활용해 지역특화사업을 고도화하고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의 자립적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농림부의 국책사업이다.
오피니언
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2.2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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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물금읍 가촌서2길 14-13에 가면 송담서원이 있다. 송담 백수회 선생의 충의를 기리고자 1714년(숙종 40년)에 세워 1717년(숙종 43년)에 편액을 하사한 양산의 유일한 사액서원이다. 1574년(선조 7년)에 동면 사배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부여(扶餘), 호는 송담(松潭)이다. 10대 초반에 일찍 부모를 여의고 성장하였으나 학문을 배우고 행하는데 힘썼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19세 때 사배리 재실에서 글을 읽던 중 왜군에게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 9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지만 고국에 대한 충절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왜인을 감탄케 하였다.송담 선생은 1696년에 양산 충렬사에 조영규군수와 함께 배향되었다가 문중에서 서원을 별도로 세워 그곳에 배향하였으며, 지금의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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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2.1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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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문화포럼(의장 황윤영) 주최로 12월 13일(금) 오후 2시부터 5시 20분까지 양산시립박물관 대강당에서 2019년 제2차 양산문화관광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가 있었다. 주제는 천성산 둘레길의 문화관광사업화였다. 후원은 양산시, 양산시의회, 양산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와이즈유 영산대학교에서 했다. 양산시의회 서진부 의장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기조 강연은 부구욱 와이즈유 영산대학교 총장이 하였다. 원효대사가 기장 척판암에서 선정(禪定) 중 중국의 태화사 산사태를 예견하고 ‘척판구중 해동원효’를 써서 판자를 날린 척판구중 전설 이야기를 했다. 원효대사 덕분에 생명을 구한 천 명의 대중이 신라로 건너와 원효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천성산에 89암자를 창건하여 제자를 수용하고 집북재에서 짚으로 만든 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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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2.1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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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둘레길의 문화관광사업화를 주제로 2019년 제2차 양산문화관광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가 있었다. 천성문화포럼(황윤영 의장, 양산도시문화연구원장) 주최로 12월 13일(금) 오후 2시부터 5시 20분까지 양산시립박물관 대강당에서 세미나가 열렸다.주제 발표는 김남룡 양산시 도시재생센터 센터장의 '도시재생과 도시관광', 정구점 Y'sU 웰니스관광연구원 원장, 와이즈유 영산대학교 교수의 '천성산 둘레길 CHUNSUNG TRAIL', 양산숲길보전회 회장인 필자의 '천성산의 역사 문화 관광자원을 살린 둘레길 활성화 방안'이 발제로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종합 토론의 좌장은 한국국제대학교 관광대학 이재달 교수가 맡았으며, 토론자는 박진호 경남연구원, 송영태 개운중학교 교장, 황윤영 양산도시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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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2.1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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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교동에 위치한 충렬사는 호국선열인 삼조의열(박제상, 김원형, 조영규)과 임진왜란 공신, 독립유공자 등 총 67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영규(趙英圭) 양산군수는 본관이 직산이며 명종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7곳의 수령을 거쳐 양산군수로 부임해 임진왜란을 겪었다. 왜군이 밀려오자 경상병사 이각은 도망쳤으나 동래부사 송상현(정읍 출신)과 함께 동래성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조영규 양산군수는 양산을 대표하는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조영규 양산군수는 1696년(숙종 22) 양산 충렬사에, 1709년(숙종 35) 동래 충렬별사(忠烈別祠)에, 1736년(영조 12) 동래 충렬사에 각각 모셔졌다. 숙종 때 조영규에게는 호조 참판을, 아들 조정로에게는 빙고 별검(氷庫別檢)을 각각 추증하였다. 조영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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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2.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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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금역에서 출발하는 5만 8천 원의 관광열차 상품을 이용하여 12월 7일 충북 영동군을 다녀왔다. 아침 7시 31분에 출발하여 영동역에 10시에 도착하였다. 이시일 시인의 제안으로 참석하였는데 일행은 6명이었다. 부산에서 온 관광객과 합류하여 버스 한 대로 영동군 관광지를 답사하였다. 관광열차의 테마가 김장담그기 체험이었는데, 다양한 관광코스가 포함되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영동역에는 감과 포도의 상징물을 설치해 좋은 인상을 주었다.영동군은 인구 48,877명의 소도시로 관광, 와인, 과일 등을 특화시켜 '레인보우 영동'으로 외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에는 양산팔경이 있다. 양산시와 한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한글로 쓰면 똑같아서 친근감이 든다. 양산시와 충북 영동군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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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2.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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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젊음의 거리’ 추진위원회에서 상권 활성화를 위해 추진해오던 사업이 결실을 맺어 12월 4일 오후 3시에 이마트 양산점 맞은편 '양산 젊음의 거리' 샵(#)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양산 젊음의 거리' 상징 조형물 제막식이 있었다.김승권 추진위원장, 류상현 부위원장, 나창식 사무국장, 이윤지 재무를 비롯한 추진위원들의 열정이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되었다.김승권 추진위원장은 디자인 전문가로서 '양산 젊음의 거리' 상징 조형물 디자인을 양산시와 긴밀한 협의를 거쳐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완성하였다.상권 활성화를 위한 타 지역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인구 및 상권변화분석, 효과적인 대응방안과 전통시장 및 상가업종 분포조사 이용고객 조사분석, 신장시장, 덕풍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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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2.0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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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봉산(封山)은 금산(禁山)과 마찬가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한, 즉 금양(禁養)된 곳 자체를 뜻하기도 하였다. 봉산에는 왕이나 왕비의 능묘를 보호하고 포의(胞衣 :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를 묻기 위하여 정해진 태봉봉산(胎封封山), 황장목만을 생산하기 위한 황장봉산(黃腸封山), 밤나무 재목을 생산하기 위한 율목봉산(栗木封山) 등이 있다. 이 기능을 보아 봉산은 특수한 목적으로 정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봉산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호를 하였다.1436년(세종 18)의 기록을 보면 태실수호군(胎室守護軍)은 능실(陵室)의 규정조례에 따라 봉산 가까이 주거를 금하게 하고, 3년마다 관원을 파견하여 순찰하게 하는 한편 잡목을 제거하게 하였다. 1734년(영조 10)에는 봉산에 대한 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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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2.0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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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범죄 예방과 관련하여 셉테드(CPTED)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거론되고 있다. 셉테드의 역사는 캐나다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에서 시작했다. 제이콥스는 1961년 그의 저서에서 자연스럽게 활력있는 도시를 만들어 범죄를 예방하는 계획을 제안했다.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을 구분하지 않는 토지이용이 대표적이다. 셉테드(CPTED) 기법이란 미국에서 1970년대에 범죄를 예방할 목적으로 디자인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용어다.셉테드는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의 약자로 환경 디자인을 통해 범죄를 예방한다는 뜻이다. 범죄가 주로 어둡고, 외지고, 방치된 곳 등에서 발생하는 것에 착안하여 이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낙후된 건축물이나 도시 공간에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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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1.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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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예방하기 위하여 전국의 각 지역에 CCTV를 많이 설치하고 있다. 텔레비전(television) 시스템은 개방회로 시스템(open circuit system)과 폐쇄회로시스템(closed circuit system)으로 구분된다. 개방회로 시스템은 화상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일반적으로 말하는 TV 방송이 여기에 속한다. 폐회로시스템은 이에 반해서 화상 정보를 특정의 목적으로 특정의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이것을 폐쇄회로 텔레비전(closed circuit television), 즉 CCTV라고 부른다.CCTV는 촬영이 아니고 녹화이므로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도 촬영이 가능하다. 다만 흐린 날이나 악조건 때는 화면이 흐릴 수는 있으나 정확히 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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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1.2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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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임진왜란 창의의사 박홍남의 소개에 이어 선무원종공신 1등인 박홍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박홍춘(朴弘春, 1537~1602)은 울산 박씨 말응파에 속하며, 자는 경인(景仁), 호는 학수당(鶴睡當)이다.이산군수 지변(之?)의 둘째 아들로 양산 용당동(당시 울산군)에서 출생하였다.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와 감포만호를 거쳐 언양현감, 기장현감을 역임하였다.현감으로 재직할 때 일을 과감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결단력이 돋보여 백성이 순종하였으며, 현의 아전들이 두려워하여 비리를 저지르지 못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아들 계숙, 조카 계종, 사촌동생 홍남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전공을 세웠다.1592년 9월 순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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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1.2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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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지역의 명동근린공원에서 열린 '2019웅상가을 국화향연'을 구경하고 공원을 둘러보았다. 명동공원은 야외무대, 쉼터, 로봇, 어린이 놀이터와 놀이기구, led 장미꽃 공원, 포토존, 연못, 화장실, 주차장 등이 잘 갖춰져 있었다. 공원 뒤로 약간 떨어진 곳에 삼한아파트가 있어 명동공원은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소나무 숲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잘 정비된 묘역이 나타났다. 울산 박씨의 후손을 설명하는 묘역 안내비를 읽어보니 흥미로운 내역이 적혀 있었다.울산 박씨 군수공파(郡守公派) 내력을 설명하는 비석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한 인물들이 나와 있었다. 훈련원봉사 흥려박공지묘(訓鍊院奉事 興麗朴公之墓)라는 비석과 박홍남(朴弘楠)의 묘소가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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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1.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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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상북면 석계시장에서 상북면 소재지 종합정비사업의 준공식을 거행하고 계란 축제인 에그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10시 30분부터 식전 행사를 열고 11시부터 준공식을 하였으며, 이어서 에그 페스티벌이 벌어져 각종 공연, 주민 노래자랑 프로그램, 계란탑 쌓기, 계란 나르기, 날달걀 선택하기 등 체험 프로그램, 계란 판매 등이 진행되었다.윤영석 국회의원, 한옥문 도의원, 이종희 시의원, 박재우 시의원이 참석하였다. 윤영석 국회의원은 이 사업의 국비유치에 대하여 소회를 밝혔다. 앞으로도 농림부 일반농산어촌 개발사업의 국비유치는 윤영석 국회의원의 측면지원이 있어야 하겠다.김일권 양산시장은 다른 일정으로 개막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으나 오후에 에그 페스티벌에 와서 주민들에게 축하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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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1.1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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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적산 봉수대는 1992년 10월 21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으며 봉수대보존회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부산 동래 계명산(鷄鳴山)과 언양 부로산(夫老山)을 연결하던 군사정보, 통신 수단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조선 후기에는 위천봉수(渭川烽燧)로 이름이 바뀌었다. 원적산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리는 표고 325m의 낮은 구릉에 있으며 면적은 1,600㎡이다.동쪽, 서쪽의 주변에 할석(割石 : 깬돌)으로 쌓은 석축이 있으며 동쪽은 둥글게 석축을 쌓아 그 안에 기와집과 고사(庫舍)를 지었던 흔적이 있다. 서쪽은 능선 정상부를 따라 석축을 경사지게 사각형으로 쌓고 안에 화덕을 두었다. 주변 석축은 기단 부분은 내탁(內托)하여 쌓고 그 위는 협축(夾築)하였는데 대부분 무너져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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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1.1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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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통신시설이었던 봉수대는 평상시에는 일거(一炬), 왜적이 해상에 나타나거나 적이 국경에 나타나면 이거(二炬), 왜적이 해안에 가까이 오거나 적이 변경에 가까이 오면 삼거(三炬), 우리 변선과 접전하거나 국경을 침범하면 사거(四炬), 왜적이 상륙하거나 적과 접전하면 오거(五炬)로 홰를 올리는데 변경에서부터 순차적으로 한양으로 연락했다. 안개, 구름, 비, 바람 등으로 봉수의 전달이 불가능할 때에는 포성이나 뿔 나팔, 징 등으로 알리고 여의치 않을 경우 봉수군이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서 알리기도 했다. 부산의 다대포에 왜적이 나타났을 때 한양까지 정보를 알리는데 38곳의 봉수대를 거쳐 약 12시간이 걸렸다고 전해진다.부산지방에는 계명산, 황령산, 간비오산, 구봉, 오해야, 응봉, 석성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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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1.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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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는 횃불을 뜻하는 봉(烽)과 연기를 뜻하는 수(燧)를 말하는데, 대략 수십리의 간격으로 바라보고 살피기 좋은 산꼭대기 요지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중앙 또는 변경 기지에 급보를 알리던 통신방법이다.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미 봉수를 나타내는 기록이 보이는데, 특히 수로왕이 다스리던 가락국에서 수로왕7년(서기 48년) 7월 27일에 허 왕후가 타고 오는 배를 보고 횃불을 올렸다는 기록이 나온다.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32권, 세조 10년(1464년) 2월 15일에 경상도의 창원부 봉산과 계명산의 봉화를 옮길 것을 청하니 따랐다는 내용이 있다. 병조(兵曹)에서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의 관문(關文)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도내(道內)의 창원부(昌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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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1.1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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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지방 행정체제로 양산(양주)에 향(鄕), 소(所), 부곡(部曲)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 양산군조에는 자기소(磁器所) 하나가 군의 남쪽 금음산리(今音山里)에 있다고 기록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의 양산군 고적조에는 와곡(瓦谷)·범어(凡魚)·원포(源浦)·범곡(凡谷) 등의 부곡과 어곡소(於谷所) 등 5개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범어, 원포, 어곡소는 읍으로부터 각각 서쪽 6리, 30리, 6리에 있고, 와곡과 부곡은 읍으로부터 각각 북쪽 5리, 10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자기소는 도자기를 생산하는 곳이다.이 중에서 원포부곡을 제외한 다른 곳은 읍에서 그렇게 먼 거리에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다만 어곡소의 위치는 현재의 물금면(勿禁面) 어곡리(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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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1.0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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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하(李游夏)[1767~?]는 1786년(정조 10) 생원시에 급제하고, 1795년(정조 19) 문과 별시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1801년(순조 1) 예조의 부정자(副正字)로 벼슬 생활을 시작하여 사헌부 감찰, 사간원 지평 등을 지냈다. 이유하는 1808년(순조 8년) 7월부터 1810년(순조 10년) 12월까지 양산 군수로 재임하였다. 1811년(순조 11) 통례원 좌통례가 되었고, 이후 사헌부, 사간원 등의 요직을 거쳐 1820년(순조 20) 북청 부사로 나갔다. 1822년(순조 22) 환곡(還穀) 운영을 잘못하여 삭탈관직 되었으나 이듬해 통례원 상례(相禮)로 복귀하였다.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 홍문관 부교리 등을 지내고, 1830년(순조 30) 세자시강원 필선(世子侍講院弼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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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1.0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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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하(李遊夏) 양산 군수가 1809년(순조 9) 감영(監營)에 올린 방보장(防報狀)에서 "감동창(甘同倉) 주변의 감동장(甘同場)은 대강수(大江水) 수구(水口)에 있어 강변에 설치한 지가 자못 100년에 가깝도록 오래되었으므로 선박들의 요충지요, 전곡(錢穀)이 모이는 곳이며, 생리(生利)가 조금 넉넉한 고로 사방에서 이(利)를 찾는 생민(生民)들이 해를 거듭하여 모여드니 민호(民戶)의 총수가 무릇 300호요, 군포(軍布)가 나오는 것이 또한 200필이나 되어 단연 동남의 도회이외다."라고 기록하여 당시의 마을 규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1878년(고종 15) 편찬한 『양산군 읍지(梁山郡邑誌)』에 따르면, "감동창은 일명 남창(南倉)이라 하는데, 남고(南庫) 3칸(間), 서고(西庫) 3칸, 좌기청 3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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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도 (동남문화관광연구소 소장)
2019.10.30 10:43